어떤 오후 벽오금학도


간만에 만난 내 표정이 꽤 이상했나 보다.
평촌역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던 아이가 순간 나보고 무슨 일이 있냐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철이라는 대중교통 수단을 그렇게 오래 탑승한 건 꽤 된 일이었다.
거주지와 생활의 반경 탓에 차를 직접 몰아 돌아다니는 습성 탓에
어느새 건방지고 몹쓸 버릇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속속 바뀌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수족처럼 움직이는 차를 몰다가
어두컴컴한 땅 속 만을 보여주는 열차에 몸을 맡긴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다.

아무튼, 평택에서 평촌까지는 꽤 힘들었으며,그 곳에서 명동까지의 여정은 고역이었다.
지상 노선보다는 지하가 아무래도 견디기 힘들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살며 땅 속으로 줄지어, 기꺼이 이동하시는 분들에게 경의를-_-
(귀가하는 길은 [7년의 밤]이 엄호 해 주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서울 오갈 때는 몰랐는데
뻥 뚫린 물가에서 낚시질이나 하다가 보니 퓨어한 시골사람이 되었다.

아아, 나는 참으로 내추럴 본 촌놈이기도 하여라.

"나는, 진심으로 지하철이 싫어" 를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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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은 국문과 4학년, 취업준비생.
ㅌ은 국문과 2학년, 필웨이의 거상.
ㅈ은 경제학과 졸업생, 주부.

출신 학교도, 연고도, 사는 방식도 각기 다른 3인.

ㅁ과 ㅌ는 오빠 동생, ㅌ와 ㅈ는 친구, 동시에 ㅁ과 ㅈ는
ㅁ의 고등학교 동창과 ㅈ의 대학교 동기의 교집합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친구라는 사이로 귀결되는 해괴한 개족보의 3인.

자주는 아니더라도, 서로 없으면 못 사는 사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간혹 이 조합으로 만나고는 한다.
서로의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결핍되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 지에 대하여 모르지만
즐겁고 반가워서 만난다. 이런 관계라면 깊지 않아도 꾸준한 것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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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세 명 모두 마리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으면서
아무도 "가 보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가 보자"라는 말이 후두까지 차 올랐지만 끝내 뱉지 못 했다.
이유는 비밀.

마리를 걱정하고 연대하고 참여하는 모든 분들께 고개 숙인 사과와 진심 담은 응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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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서울 나들이는 즐거웠다.
하지만 혹여 눈 감으면 코 베어갈까 무서웠슈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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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부루마불...
온몸으로 체득한 환희와 굴욕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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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 살 터울 '여자친구의 친구들'에게
만나서 반갑다고 90도, 가시는 길 살펴 가시라고 90도,
그렇게 기꺼이 진지하게 인사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인간 그렇게 많은 오후 10시 반의 명동 버거킹 앞에서
티셔츠 쪼가리에 쪼리 신은 후줄근한 동생에게
매끄럽게 차려 입은 장신의 신사가
허리 숙여 인사하는 광경을 목격하신 명동의 행인 여러분들은 드문 구경 하셨습니다. 돈 내세요-_-

워낙 집안에 여자가 드문 탓인지(사촌누나가 있지만 좀 쉬크해요)
학교나 그 외 활동에서 만난 누나들 잘 따르고 여동생들은 굉장히 예뻐하는 편이다.
이 형님이라면 후일 다시 만나 내가 1도 정도는 더 굽혀 인사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연애가 절실한 나에게
초면의 남성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감정은 쉽사리 들기 힘들다. 많이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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